투표용지 부족 사태라는 초유의 주권 침해 속, 축구 응원 앞세운 국민의힘
지지율 향한 ‘대중 영합’보다 민주주의 본원적 위기 해결이 정치인의 본분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대중의 정치적 관심과 비판 의식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동원되었던 이른바 ‘3S 정책(Screen, Sports, Sex)’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스포츠(Sports)는 대중의 눈과 귀를 가장 쉽고 강력하게 사로잡아, 당면한 사회적 부조리와 정권의 실책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게 만드는 탁월한 기제로 작동해 왔습니다.
국가적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열릴 때마다 정치권이 그 열기에 편승하려는 유혹을 느끼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한 장의 게시물은 이러한 과거의 그림자를 다시금 떠올리게 합니다.
국민의힘은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맞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대대적인 홍보 이미지를 게재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땀과 노력을 격려하고 대중의 정서에 공감하겠다는 취지일 것입니다.
선거 이후 지지율 반등이 필요하고, 국민이 좋아하는 축제에 발을 맞춰 점수를 따고 싶은 정당의 생리는 충분히 짐작 가능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단순한 정책 실패를 넘어, 일부 지역에서 유권자가 투표소에 가고도 투표용지가 부족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진 직후입니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가장 신성한 권리인 ‘참정권’이 행정 부실로 인해 통째로 박탈당한,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비상상황인 것입니다.
이러한 시점에 집권 여당이 국가적 위기 수습보다 월드컵 응원 열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행위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독자의 관심을 심각하게 분산시키는 행위이자 본질을 흐리는 대중 영합주의에 불과합니다.
축구 경기 스코어보다 더 시급한 것은 훼손된 주권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이며, 국가대표팀의 승리보다 더 절실한 것은 부실 선거로 상처 입은 민주주의의 승리입니다.
일반 대중은 월드컵을 즐기고 환호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인과 공당(公黨)의 태도는 달라야 한다.
대중의 축제 뒤에 숨어 당면한 정치적 책임을 일시적으로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국민의힘이 보여야 할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는 축구 경기를 시청하며 지지율을 저울질하는 것이 아니라, “축구 응원보다 민주주의 수호가 먼저”라며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여야 협력을 통한 재선거 추진 등 실질적 대책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정치가 본분을 잃고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의 뒤편으로 숨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권을 빼앗긴 국민에게 돌아온다.
국민의힘은 대중의 축제 분위기에 편승하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자신들이 서 있어야 할 진짜 전장(戰場)인 ‘헌법 가치 수호’와 ‘참정권 구제’의 현장으로 즉각 복귀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