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학생들을 향한 광기… 배재고 논란, ‘현대판 포그롬’인가

최근 고교 야구 대회에서 발생한 배재고 야구부의 ‘스타벅스 구호’ 논란을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 이성적 통제의 범위를 넘어섰다

당사자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교육적 책임을 묻는 수준을 지나, 학교 전체를 향한 무차별적 테러와 사적 제재로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의 크기보다 분노의 크기를 키워 군중을 선동하는 지금의 모습은, 과거 특정 집단을 낙인찍고 무자비하게 박해했던 역사 속 ‘포그롬(Pogrom)’의 현대적 변종을 목도하는 듯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사안의 본질은 명확하다

고교 선수들이 공식 경기장에서 상대 팀을 향해 역사적 상처와 결부된 부적절한 구호를 외친 것은 분명한 잘못이며, 스포츠 정신 위반이다

이에 따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는 지난 1일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열고 ‘전국대회 6개월 출전 정지’와 당일 경기 ‘몰수패’라는 전례 없는 중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그 이후 전개된 사회적 현상은 기괴할 정도다

국가적 민생 현안이나 주요 정치 뉴스보다 고등학생들의 말실수 뉴스가 연일 포털 메인을 도배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확인되지 않은 허위 사실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악성 루머를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며 불씨를 지폈고, 조회수 장사에 혈안이 된 유튜버들과 방송인들은 학교 앞을 점령했다

배재고 측이 공식 채널을 통해 “허위 기사 및 사칭 게시글에 대한 자제를 부탁한다”고 입장문을 발표해야 했을 정도다

더욱 심각한 것은 죄 없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2차 피해다

학교 정문 앞에는 무단으로 보낸 근조화환이 늘어섰고, 대입(수능)을 코앞에 둔 고3 수험생을 포함한 일반 학생들이 기자들과 시위대의 진에 막혀 학습권을 침해당하고 있다

잘못을 저지른 일부 야구부원을 넘어, 학교 전체를 ‘악(惡)’으로 규정하고 집단적 모욕을 주는 행태는 과거 유럽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이나 포그롬의 군중심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 같은 ‘마녀사냥식 낙인찍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교육계와 정치권에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2일 공식 입장을 통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도 “학생 개인에 대한 신상 공격이나 과도한 비난이 확산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며 “책임을 묻는 과정도 교육의 원칙과 절차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학생들이 성찰을 통해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징계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김혜지 전 서울시의원은 “협회가 존재하지도 않는 규정을 들어 무리하게 징계를 남발해 무고한 선수들의 미래를 짓밟고 있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체육계 법조인들 역시 이번 단체 징계가 구호에 참여하지 않은 무고한 선수들, 특히 대학 진학과 프로 드래프트를 앞둔 3학년 학생들의 입시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가혹한 연좌제’라 지적하며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대한체육회 재심 청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진짜 비극은 이 사안이 거대한 ‘정치적 소모품’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한쪽에서는 역사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10대 미성년자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드는 반면, 다른 한쪽(극단적 보수 성향 일각)에서는 이 사건을 빌미로 “5·18은 폭동이 맞다”는 식의 역사 왜곡 발언을 쏟아내며 정당성을 부여하려 한다

양 진영 모두 사안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고등학생들의 철없는 실수를 진영 싸움의 중심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을 뿐이다

극단적인 진보와 보수, 양쪽의 광기 어린 정치 공방 속에서 정작 가장 먼저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일상과 미래는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다행히도 당사자인 학생들은 어른들의 정치싸움과 달리 교육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3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배재고 야구부원 36명 전원과 교직원이 오는 6일 광주일고를 직접 방문해 사과하고,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역사를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그 역사적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 아래 행해지는 집단적 폭력과, 이를 반대 방향의 정치적 선동으로 이용하는 행태는 모두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괴물일 뿐이다

지금 배재고 주변을 에워싼 언론과 대중,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은 스스로가 ‘정의의 사도’인지, 아니면 자극적인 분노와 진영 논리에 취해 미성년자들을 사냥터로 몰고 있는 ‘현대판 포그롬’의 가해자인지 냉정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처벌과 비판은 교육의 울타리 안에서 멈추어야 하며, 정치의 도구로 소모되는 아이들의 일상은 즉시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댓글을 남겨주세요

귀하의 의견을 입력하십시오!
여기에 이름을 입력하십시오.

spot_imgspot_img

인기뉴스

기사 더보기
다른 소식 더보기

반도체 호황에 따른 800조 지출 시대 개막, 역대급 세수 유입과 지출 구조조정으로 균형 맞춘다

사상 첫 800조 원대 총지출 편성, 역대급 반도체 세수와...

800조 열린 슈퍼 재정 시대와 언론사별 프레임 장막의 실체

정부가 내년도 나라 살림 규모를 사상 최초로 800조 원을...

사교육 억제 정책의 파산… 공교육, ‘정보 처리’ 아닌 ‘정보 생산자’ 키워야 산다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조국 전 대표, 이재명 대통령 지지율 하락 직시 요구… 여론조사 지표 일제히 하락세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